💭 미브 브레인들의 릴레이 탐구 시리즈. 네 번째 주제는 ‘소비’입니다. 소비에 관한 한계 없는 생각을 만나보세요.
집세, 식비, 교통비,
통신비, 적금, 보험료…
매월 1인 가구를 지탱하기 위해 짊어져야 할 고정 지출비는 대략 이 정도. 나는 음양오행 중 목(木)의 기운을 타고났는데, 이 비용은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는 생명수에 가깝다. 문제는 내가 물로만 살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 수시로 비료를 공급하지 않으면 삶의 의미를 찾다 높은 확률로 웃자라고 만다.

여기서 비료는
가슴 뛰게 하는 [무언가]
열성적으로 달려들던 세계가 좁았을 땐 딱히 지출이랄 게 없었다. 그런데 서른 살을 기점으로 사는 낙에 집착하기 시작하면서 변동 지출비의 지평이 넓어졌다. 꽂힌 분야를 더 깊게, 더 좋은 퀄리티로 파고 싶다는 열망이 유료 콘텐츠에 통장 한 켠을 내어준 것이다.

주요 지출 분야는 문화 산업(명목은 거창해야 하는 법). 극장 영화,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OTT 등을 제외한 올해 상반기 콘텐츠 소비 항목을 대략 나열해 보자면…
🛒 2024년 상반기 유료 콘텐츠 가계부 📊
1월
💸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 김성철 배우가 말아주는 ‘철몬테’는 뮤덕이 아니라도 한 번쯤 봐야 한대서 문화재 보존가의 심정으로 VIP석 티켓팅
💸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2월
💸 요시다 유니 개인전
- 아날로그 수작업 방식으로 장인 정신을 보여주는 일본 아트 디렉터 요시다 유니의 작년 첫 해외 전시는 비록 못 갔지만, 신작 최초 공개 연장 전시는 못 참으므로 막차 탑승
💸 아이돌 팬클럽 가입
3월
💸 아이돌 팬미팅 및 공연 MD
💸 아이돌 소통 플랫폼 정기 구독
4월
💸 밴드 콘서트(예정)
- 가열차게 일반 예매, 시제석 광탈 후 콘서트 전날까지 취켓팅 시도 중
5월
💸 뮤지컬 <헤드윅>(예정)
- 한때 허위 매물로 불리던 전설의 ‘뽀드윅’이 8년 만에 돌아왔다는 소식에 1층 좌석 건질 때까지 무지성 티켓팅 갈김
아무래도 최대 지출은 케이팝 아이돌이다. 팬싸 당첨용 앨범을 몇백 장씩 사고 해외 투어를 함께 도는 스케일을 기대했다면 사과한다.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고,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다’라는 건 돌판 불변의 진리. 현생을 사는 데 급급한 나머지 체력마저 사라져 ‘라이트덕’의 길을 걷고 있다.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가성비 덕질’까진 아니더라도 저게 얼마나 약소한 수준인지… 입덕하면 실제로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오프라인 공연 선 예매는 팬클럽 가입이 필수고, 일반 예매에 성공한대도 어쩐지 손이 허전해서 응원봉도 장만하게 된다. 그리고 현장에서 한정 판매하는 공식 MD나 네임드 홈마 굿즈를 보는 순간 물욕이 일렁인다.

공연이 끝나면 2차 파티 시작. 공연 썰로 팬 커뮤니티 리젠이 폭발하고 같이 불판을 달리다 보면 덕심은 최고조에 이른다. 좀 더 내밀하게 알고 싶고 그들에게 가 닿고자 하는 맘이 걷잡을 수 없어진다. 팬 카페, 멤버 SNS 등 대외 공개 게시물만으로 쉽사리 만족이 되지 않는 것. 이때 결제를 결심하는 게 위버스(Weverse), 버블(Bubble) 같은 구독형 소통 플랫폼이다.

나는 매월 11,500원을 쓴다는 점에서 이사배보다 씀씀이만은 큰 여자
최애가 보내는 프라이빗 메시지와 독점 콘텐츠. 말만 들어도 설렌다. 사실 이런 메커니즘의 유료 서비스는 이전에도 있었다. 2000년대 초중반 밀레니얼 세대에 친숙한 ‘유에프오타운(UFO TOWN)’이 대표적. SNS도 활성화되기 전이라 스타와 유무선으로 문자 메시지 및 사진을 주고받는 기획이 획기적으로 다가왔다.
세월이 흐른 만큼 서비스는 더 진화했다. 일 대 다수인 건 동일하지만 쌍방향 소통처럼 보이는 데 도가 텄달까. 구독자 닉네임을 불러주고, 구독 일수에 따라 혜택이 달라지는 등 개인화 장치도 곳곳에 마련했다. 리얼 타임으로 사적인 대화를 나누며 정서적 매개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아이돌이 자신의 감정과 사고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쌓은 유대감은 관계를 저해하는 사건이 발생하면 이를 상쇄하는 열쇠가 된다.
더욱 내면화되고 고도화된 방식의
진정성과 친밀성을 상호 부여할 때
팬덤과 시장에서 가치를 갖는다.
– 도서 <페미돌로지> 중
팬들에겐 소속사가 내놓는 콘텐츠 100개보다 영향력 있단 말이 나올 정도. ‘점메추(점심 메뉴 추천)’처럼 소소한 일상부터 깊이 있는 고민까지 다양한 주제의 메시지로 교감할 수 있으니까. 미공개 사진, 음성 메시지, 라이브 방송을 비롯해 아티스트가 진솔하게 작성한 장문의 편지도 몰입감을 높인다.

이러한 플랫폼 기반 팬덤 서비스를 재유행시킨 건 디어유의 ‘버블’이다. 팬데믹으로 대면 서비스가 전면 중단되면서 대중음악계가 난항을 겪던 2020년 2월 출시돼 새로운 반향을 일으켰다. 디어유가 2023년 3분기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버블은 매출액 204억 원, 분기 평균 구독 수 230만을 기록하며 꾸준히 성장 중이다. 참여 주체도 아이돌, 배우, 운동선수, 크리에이터에 이어 일본 아티스트로 확장됐다.

직접 버블을 써본 소감은
‘소비자를 안달 나게 만들어야 한다’
드라마 본방도 안 챙겨보는 시대에 이렇게 매일 목 빼고 기다린 콘텐츠가 있었나. 케이팝 문화, 소비 트렌드를 구독 모델과 잘 연결한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케이팝 자체가 다양한 산업과 어울리는 IP(지식재산권)를 갖고 있고, 타깃마저 확실하다 보니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성공이긴 하다. 이러한 성과를 등에 업고 위버스와 버블은 커뮤니티-콘텐츠-커머스로 이어지는 팬덤 라이프 플랫폼을 향해 달리고 있다.

직장인에게 ‘진짜 커피’는 따로 있다고 한다. 출근한 사실이 믿기지 않아서 살기 위해 포션처럼 마시는 건 가짜, 날씨 좋은 날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가 진짜라고. 어쩌면 내게 ‘진짜 소비’는 생필품 같은 게 아니라 날 설레게 하는 콘텐츠가 아닐까? 오늘은 버블 재결제일이다. 취미가 세 개는 있어야 인생 노잼 시기가 와도 솟아날 구멍이 생긴다는데… 내일이 밝으면 내가 뭘 또 결제하게 될지, 설레어서 지갑이 떨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