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브레인

50대의 소비

💭 미브 브레인들의 릴레이 탐구 시리즈. 네 번째 주제는 ‘소비’입니다. 소비에 관한 한계 없는 생각을 만나보세요.

40대에는 소비가 미덕이었습니다. 어릴 적 꿈꿨던 욕망들, 예컨대 몇 백만원 짜리 자전거, 6개월을 배웠지만 결국 인테리어 소품으로 전락한 첼로, 40년이 넘는 LP를 듣겠다고 산 턴테이블(다행히 400만원이 넘는 마틴 기타는 사지 않았지만) 따위를 사대면서 나는 성공했다는 착각에 빠졌습니다. 어쩌면 그땐 그게 삶을 버티어 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었겠지만요.

50대에 접어들고 첼로를 제외하고는 모두 당근으로 사라진 지금, 그때는 쾌감이었던 (인정합니다, 그래서 첼로는 아직 못파는 걸 거에요) 소비를 후회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그 돈으로 주식을 사서 처박아 놨더라면 아파트도 샀을지 몰라, 하는 해괴한 변명을 해대면서요. 물론 주식을 샀다고 해도 촐싹 대는 성격 탓에 결국은 다 날려먹었을 겁니다. 네, 그러니 40대의 소비는 저에게 당신의 쾌감 말고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습니다.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 이런 걸 깨달은 건 아닙니다. 50을 넘으면서 자연스레 욕망도 줄었습니다(어쩌면 쓸 돈이 줄었을지도요, 가슴 아프게, 하지만 이 경우는 아닌 걸로 위로합시다). 별 대책이 없는 미래가 두렵기도, 아 이것도 빼기로 합시다. 뭔가를 사려고 하다가 집을 둘러보면 대체품이 어딘가 있었습니다. 아, 이런 게 나한테 있었어? 하는 기분 좋은 쾌감도 있었지만 낡아서 못 쓰게 된 것들, 오히려 새 걸 사는 게 나은 물건을 발견할 땐 슬펐습니다. 과거의 소비가 쓸모 없었으니까요.

약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소비로 즐거움을 얻을 나이가 아니구나, 소비는 더 이상 즐겁지 않구나. 그래서 저는 미니멀리스트 흉내를 내보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한 달 이상 쓰지 않는 것들을 버리기로 마음 먹었으나 차마 손이 떨어지지를 않아서 6개월, 아니 1년 정도 안 쓴 것을 버리기로 했습니다. 제일 먼저 오래된 책을 버렸고, 덕분에 책장에 여유 공간이 생겨서 책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정확히는 알라딘에 보냈습니다. 알라딘이 수거해서 돈이 될 만한 책은 돈을 주고 아니면 버리는 서비스가 있거든요.

다음으로 옷을 버렸습니다. 2~3년 동안 한 번도 안 입은 옷들을 헌옷수거함에 다 집어 넣었습니다. 신발도 버렸고 넉넉해진 옷장과 신발장을 보며 아내가 흐뭇해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기기들을 버렸습니다. 안 쓰는 공구들, 시간이 좀 지난 디지털 기기들, 만 원 이상 받을 수 있는 것들은 당근으로 처분했고 그 이하는 다 버렸습니다. 아내는 몇 천원에라도 팔자고 했지만 저는 인건비가 안 나온다며 거절했습니다. 제 방에 있는 장식장이 여유로워졌습니다. 물건을 우겨 넣느라 힘을 쓸 일도 없고 보기에도 깔끔하니 개운합니다.

이렇게 완벽한 미니멀리즘을 할 수는 없을 거 같아요

네, 결과는 매우 해방스러웠습니다. 없던 공간이 생겼고 여유도 남았습니다. 과장하면 내면의 평화를 얻었다고나 할까요. 다 버리고 나면 사야되지 않나요? 라고 물어보실 법도 합니다. 하지만 안 그렇더라고요. 한동안 쓰지 않았던 것들은 결국 쓸데없는 것이었습니다. 물건들에겐 미안하지만 쓰레기였던 겁니다. 저만 그럴까요. 아닌 것 같습니다. 주변의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비슷하더군요. 안 버린 녀석들이 몇 있긴 하지만 가만 얘기를 듣더니 나도 버려야겠다, 고들 합니다. 물론 그들이 뭘 버릴지 저는 모릅니다. 어쩌면 버림을 당했을 수도!

기후위기 앞에서 소비는 더 이상 미덕이 아니라 탐욕이라고들 합니다. 탐욕은 필요 없는 생산과 소비를 부추기고 결국 쓰레기를 만듭니다. 이미 바다는 핵오염수로 오염됐고(이제 태평양을 한 바퀴 돈 바다물이 우리 해안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누군가 모니터링을 하기는 하는 걸까요). 토지는 개발로 몸살을 앓습니다. 핵오염수가 소비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묻지는 마세요. 핵 발전소는 소비에 필요한 전기를 생산하는 곳이니까요. 그렇다면 소비는 재앙하고도 연결이 되는 것 같습니다.

원했든 원하지 않든 저는 소비가 줄었고 카드 값도 줄었고 인생엔 별로 불편함이 없이 지냅니다. 술 값도 엄청 줄었군요. 덕분에 신체는 좋아졌습니다만 정신은 약간 메말라 가는 것 같… (뭔가 얘기가 딴길로 새고 있습니다)지만 생활은 불편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저는 소비를 조금 더 줄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휴대폰을 분실해 새로 산 아이폰 15 프로용 맥세이프 충전기를 구입했는데 거기 딸려온 제품 브로셔를 보면서 아, 이것도 사야 하나, 고민을 하는 저를 발견하고 맙니다. 역시 오십을 넘었어도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

김레이
김레이https://ailiteracy.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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