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브레인

조용한 열정

💭 미브 브레인들의 릴레이 탐구 시리즈. 두 번째 주제는 ‘강점’입니다. 직무를 비롯해 자기 삶에서 발견한 강점에 관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단번에 자신의 ‘강점’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행운아인가.
“나의 강점 발견”이라는 두 번째 글쓰기 주제를 들고서, 내게 든 첫 생각은 막막함과 당혹스러움이었다.
강점과 장점의 사전적 정의가 헷갈려서 찾아보니, 강점은 비교 대상(타인)보다 더 잘하는 점을 뜻하고, 장점은 자신이 가진 역량 중에서 잘하고 못하는 점을 구분하는 것이라고 한다.
장점보다 강점을 나열하는 게 힘든 이유가 이 뜻풀이에서 드러나는 것 같다. 나처럼 자신감과 자기 확신이 별로 세지 않은 사람은 아마 강점을 선뜻 말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무한경쟁 사회에 지치고 치여서 본인의 역량을 낮게 평가해서일 수도 있겠고, 아니면 강점을 수치화할 명확한 기준점이 없어서기도 할 것이다. 무엇이 됐든 한 사람에게 명확한 강점이 있다는 건 축복인 것 같다. 그 사람에게 인생을 살아갈 좋은 의미에서의 무기가 있다는 뜻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쥐어 짜내서 내 강점을 하나 고르자면, 침착함을 꼽겠다.
’신중함’을 택하기엔 삶에서 선택의 결과가 그리 똑똑하지 않은 적이 많았고, ‘차분함’을 택하기엔 겉과 속의 모순으로 혼자 고민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감상 ‘침착하다’는 것은 외관상의 이성 유지와 별도로 내면에서의 해결책 강구도 나름대로 하고 있다는 뜻 같고, 그래서 이 표현이 나에게 더 맞는 단어인 것 같다.

이건 글 하단 프로필 옆에 태그로도 달린 MBTI INTJ(인티제)의 특성이기도 한데, 일견 지나칠 만큼 모든 상황에 대해서 판단하고 해석하려는 성향이 침착해 보이는 모습으로 반영되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에게 로봇처럼 보일 수도 있는 이런 특성이 감정적 동요나 화를 방지해서 더 큰 사고를 막는 강점이 되는 점은 좋은 것 같다. 덕분에 30년 조금 넘는 동안 송사에 휘말리는 큰 사건·사고 없이 무난하게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강점이 곧 약점이 되기도 한다. 너무 침착한 태도는 다른 이들로 하여금 무관심하다거나 냉담하다는 인상을 줬을 것이다. 영화로 따지자면 스탠리 큐브릭(<닥터 스트레인지 러브>, <배리 린든>, <풀 메탈 자켓> 등)의 작품들처럼.

글을 쓰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긴 한데, 침착함과 조용함 속의 열정이 일과 삶에 있어서 또 다른 강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런 나에게도 무언가에 대한 열정이 있나? 하고 생각해 보면 바로 떠오르는 한 가지는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열정적으로 좋아했던 영화 매체에 대한 사랑 같은 것이 그것이다. 영화광(보는 사람)으로서의 열정, 영화학도(만드는 사람)로서의 열정, 영화애호가(평하는 사람)로서의 열정 모두를 그동안 계속 유지했던 것 같다. 비록 지금은 열정의 종류가 좀 줄어들긴 했지만.

얼마 전 작고한 영국의 영화감독 테렌스 데이비스(1945~2023)를 조용히 떠올려 본다. 일생 영화를 몇 편 만들지 않았지만, 그의 작품은 잔잔함 속에서 깊은 감동을 준다. 개인적으로 감명깊게 본 감독의 최근작, <조용한 열정>(2016)의 주인공이자 실존 인물인 은둔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어쩌면 감독 자신의 성정을 투영한 캐릭터일 수도 있겠다. 두 사람 모두 당대에는 크게 조명 받지 못했지만, 자신만의 확고한 예술로 세상에 큰 울림을 줬다.
이들의 아름다운 삶을 생각하며 나 역시 작은 희망을 가져 본다. 조용한 열정이 언젠가는 강점으로 빛나길 바라며.

규현
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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