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브레인

사건의 오후

💭 미브 브레인들의 릴레이 탐구 시리즈. 열한 번째 주제는 ‘이벤트’입니다. 고객들의 이목을 이끄는 이벤트 기획의 희노애락을 만나보세요.

푸른 벨벳 드레스를 입은 이브가 오후의 햇살이 부서지는 창 밖을 보며 거실 의자에 앉아 있다. 그녀의 마음은 오늘따라 왠지 모를 혼란과 불안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이 지나간 일들 때문인지 현재의 상황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브는 문득, 오늘 오후가 단순히 흘러가는 무료한 시간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을 느낀다.

탁자 위에 은색 열쇠가 놓여 있다. 그녀는 그 열쇠가 어디서 왔는지, 그걸로 무엇을 열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열쇠가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고, 손가락 끝에서 미묘한 떨림을 느끼게 한다. 이브가 열쇠를 집어 들고 밖으로 나선다.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이브는 자신에게 익숙한 집 안에 ‘다시’ 들어왔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무언가 달라져 있다. 거실에는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움직여서 깨진 꽃병과 떨어진 수화기가 보이고, 바람에 휘날리는 커튼 밖에서는 어떤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이브가 그림자를 따라 다시 밖으로 나간다.

검은 망토를 두른,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형체를 따라 기묘하고 이상한 길을 걷기 시작한다. 길은 끝이 보이지 않는 미로 같다. 걷는 동안 과거의 기억을 하나 둘씩 무의식적으로 떠올린다. 그녀가 잃어버린 것들, 잊고 싶었던 것들, 다시 살고 싶었던 것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걷다 보니 어느새 또 다른 집 앞에 서 있게 된다. 작은 집은 오래된 느낌이 들고, 문은 잠겨 있다. 그녀가 주머니에서 지니고 있던 은색 열쇠를 꺼내 문을 연다. 우연히 아귀가 맞은 문이 열리자마자 이브는 그 안에 또 다른 자신이 앉아 있는 것을 본다. 그 이브2가 창가에서 오후의 햇살을 나지막하게 응시하고 있다.

이브는 곧 현실의 나가 아닌, 꿈 속의 이드를 감각한다. 그리고는 이브2에게 천천히 다가간다. 상대도 서서히 고개를 돌리며 그녀를 쳐다본다. 이브가 손을 내밀고, 그녀의 또 다른 자아도 마주 손을 뻗는다. 두개의 손가락 끝이 닿는 순간, 두 사람은 하나가 된다.

잠시 후, 눈을 뜨는 이브. 자신이 처음 앉아 있었던 거실에 있음을 깨닫는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창 밖을 바라봤을 때, 오후의 햇살은 여전히 부서지듯 쏟아지며 올가미처럼 집 주변을 감싸온다. 그녀는 모든 것이 꿈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단순한 선잠이 아니었다는 것 또한 안다. 

어느 틈에,
화면이 디졸브 되듯이 은색 열쇠가 은색 식칼로 변화한다. 그 광경이 이브의 인식에 새겨진다.

초인종이 울린다.
남편이 벌써 귀가했나 보다.

규현
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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