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브레인

경계의 해체

💭 미브 브레인들의 릴레이 탐구 시리즈. 열네 번째 주제는 ‘세대’입니다. MZ세대부터 영피프티까지, 세대에 대한 여러 담론을 만나보세요.

큰 것보다 작은 것이 더 중요시되고, 담론보다 취향이 존중받는 시대.

이것은 구호가 아니라, 실제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거시 서사는 저물고, 바야흐로 미시 서사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제 집단이나 국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적어도 문화나 콘텐츠 분야에선 그렇다) 잠시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역사의 반동(극우화, 다극 체제)이 지나가면, 다시 인간 개개인의 가치가 주목받는 세상이 도래할 것이다. 

최근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유명한 김난도 교수가 제안한 트렌드 용어 ‘영피프티’가 여러모로 화제다. 인구나 영향력으로나 현재 한국 사회의 중추를 형성하고 있는 50대 즈음의 70년대생들이 새로운 소비문화를 창출할 것이라는 게 영피프티의 주요 개념.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를 통해 몇 년간 사회의 주요 추세를 효과적으로 요약·예측했던 김 교수답게 이번에도 새로운 개념을 잘 제시했다는 느낌도 들지만, 젊은 층의 반감도 그와 비례해서 큰 것 같다. 주요 비판인즉, 인위적으로 트렌드를 조장하는 용어 팔이 장사를 또 했다는 것.

SNS(X)에선 ‘김난도가 왜 자꾸 영피프티를 팔겠어. 말이 트렌드리포트지 본인도 말했듯 70년대생이 가장 대가리많고 가장 많이 벌어제낀 소비자니까 타겟한테 맞는 광고를 하는 거지.. 우리 같은 거지들한텐 관심도 없음’같은 원색적인 비난도 쏟아지는 중이다.

권력과 기득권에서 많이 동떨어진 (나를 포함한) 대한민국 2030의 불만과 분노는 이해가 간다. 이전 세대들이 비교적 젊은 나이에 한 국가의 정치·사회·문화 헤게모니를 거머쥐었던 것과 달리, 소위 말하는 요즘 MZ세대는 오로지 ‘경제적’ 관점(지갑을 열어줄 소비자의 측면)에서만 분석되어 있다. 한마디로 기성세대에 의해 타자화 되어있는 것이다.

하지만, 김 교수가 한 인터뷰에서 언급했던 ‘세그먼트의 종말’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과거엔 연령이나 성별 같은 인구학적 특성으로 세대를 나눠 설명했다면 이제는 그 경계가 점점 흐려지고 있다는 것이 요지인데, 일견 수긍이 간다.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입장에서 이 말은 곧 무한한 예술적 시도의 허용을 뜻하기 때문이다.

나는 세대 구분의 해체가 → 포스트모더니즘 사조와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20세기 후반부터 전방위적으로 문화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의 핵심 메시지는 ‘상대주의 세계관'(진리는 부재하고 각자의 이야기들만 존재하는 세상)인데, 지금만큼 상대주의가 어울리는 시대도 없기 때문이다. 가면 갈수록 인간 개체 개개인의 개성, 특성, 취향이 중요해질 것이고 이에 따라 포스트모던한 콘텐츠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요소(상호텍스트성, 혼성모방 등)를 장착한 콘텐츠도 대두될 것이다.

대중 문화에서도 이미 몇십 년 전부터(<펄프픽션>, <트루먼 쇼>, <매트릭스> 같은 영화들) 그런 흐름이 계속 이어져 오고 있는데, 이제는 거의 모든 영화·OTT 흥행작들이 복합 장르의 성격을 띠고 있다. 또한, 탈중심의 흐름에 따라 과거 ‘국민 OO’로 불렸던 범대중적 히트는 사라지고, 일정 정도의 화제성만 쟁취하는 각개전투의 전장이 계속 펼쳐질 것이다. 

결국 승자는 미시 개인의 숨겨진 욕망과 취향을 가장 잘 취합한 다차원적 특징·매력을 가진 콘텐츠가 될 것이다. 무난하게 잘 만든 콘텐츠보다는 뾰족하지만 패러다임을 바꾸는 힘을 가진 작품, 스토리가 주목받을 것이다.
이렇게 글로 정의하긴 쉽지만, 그것을 어떻게 만들고 표현하는가는 머리 싸매고 한참을 고민해야 할 창작자들의 숙제기도 하다. 인류가 지속하는 내내 이 문제는 이어질 것 같다.       

규현
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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