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브레인

내 마음속에 저-장 (강박)

💭 미브 브레인들의 릴레이 탐구 시리즈. 두 번째 주제는 ‘강점’입니다. 직무를 비롯해 자기 삶에서 발견한 강점에 관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내가 누군지 알려야 될 거 아니에요?”

사회생활 필수 스킬에 대한 방송인 박명수의 답. 직장인 심경 대변 짤만 오조 오억 개인 그답게 요즘 같은 자기 PR 시대에는 잘난 점을 알려야 기회도 얻는다고 말한다.

이번 글쓰기 주제를 떠올려본다. ‘나의 강점 발견’. 업무나 삶에서 발현된 강점을 이야기하라는데… 사전적 의미처럼 내가 남보다 특별히 우세하거나 뛰어난 점이 있던가. 말하자니 객관성이 결여된 자의식 과잉 같고, 없다고 하자니 그동안 무얼 쌓아 왔나 갑자기 씁쓸해진다.

저장 강박도 강점이라고 뉴스룸에 소개하면 좀 그렇나…

다만 내가 남들보다 유난스러운 건 아카이빙이다. 전부터 메모와 북마크를 즐겨 했지만, 에디터가 된 후 영감이나 인사이트를 보관하는 데 집착 아닌 집착이 생겼다. 캡처 아티스트가 된 탓에 스마트폰 저장 공간은 늘 부족하고, 취미는 페이지 마커로 책 고슴도치 만들기. 한 시간짜리 영상 작품도 인상적인 점을 메모하느라 몇 시간 만에 완주하곤 한다.

이쯤 되면 저장 강박이라 할 만한데… 애초에 ‘편집(編輯)’이란 단어가 모아서 엮는다는 뜻이니.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좋은 걸 골라내 원하는 상을 빚으려면 당연히 많이 수집해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언제 불쏘시개로 쓸지 모를 장작을 두둑이 패 놓고 나면 그리 뿌듯할 수 없다.

엮기 전에
우선 철저한 컬렉터가 되어야 합니다.

– 매거진 <브루터스(Brutus)> 편집장 니시다 젠타

게다가 장르를 불문하고 모은 다양한 세계를 보고 있노라면 사고가 확장되는 느낌마저 인다. 에디터의 역할 중에서도 제일은 세계에 대한 꾸준한 호기심으로 타인을 설득할 최적의 방식을 찾는 것이다. 사람들이 무엇에 반응하는지 새로운 흐름을 읽고, 매력적인 소재로 대중을 만족시킬 콘텐츠를 만드는 것. 그래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소비해야만 하는 명분을 제시할 수 있다.

지금에서야 고백하지만 에디터 일이 회의적인 시절도 있었다. 전문 기술 없이 넓고 얕은 지식으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 ‘편집실’ 필명 앞에 정체를 드러내선 안 되는 존재라는 결핍이 나를 오래 지배했다. 그런데 편집 대상이 무수해지고 분야별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이들을 연결해 의미를 창출하는 존재가 나날이 중요해지고 있다. 편집이란 행위로 목소리를 내며 영토를 넓히는 에디터도 늘었고.

그래서 이 일과 이대로 작별하기엔 아쉽다는 결론에 닿았다. 언제든 다른 형태로 발전할 기회가 열려 있는 업이라는데. 내 취향을 바탕으로 엮은 콘텐츠가 누군가의 가치관이 되고, 떠오르는 문화가 될지 모르는 시점에 취향 구축을 멈출 순 없다. 역시 나의 저장 강박은 당분간 완치가 불가능할 듯싶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취향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정말 취향이란 게 있나요?
대체 취향이란 건 뭘까요?
취향은 호수에 물고기가 많을 때나 가능한 거예요.
(중략)
내 취향을 찾아내는 방법은
전부 다 먹어보는 것밖에 없지요.

– 변영주 감독, 책 <영화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다> 중

유민
유민
돌고 돌아 덕질로 귀결된다, 콘텐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