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오빠는 목차팀이야? 목차만 만들어?” 아주 옛날 옛적(!)에 제가 막 생긴 콘텐츠팀 팀장을 처음 맡았을 때 출판사에서 근무하던 제 동생이 저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때는 웃고 말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목차팀이란 말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니로군요. 콘텐츠라는 말이 생소하기도 했고 내용물 정도로 번역하던 시대여서 재미있게 들렸던 듯 합니다.
시대가 흐르면서 콘텐츠가 중요하다는 외침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마지막 소비자에게 도착하는 내용물이니 당연히 중요하겠지요. 상품이든, 서비스든, 정보든… 강조하지 않아도 원래 콘텐츠는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콘텐츠는 그렇게 중요한 대접은 받지 못했습니다. 콘텐츠의 품질을 개선하기 보다는 콘텐츠로 얼마나 더 들어오게 하느냐는 기술 문제에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미루어 짐작컨대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 그렇게 녹록하지 않아서 였을 거 같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콘텐츠란 무엇일까요? 아니면 이 시점에서 곧바로 콘텐츠란 뭔데? 하고 질문을 던지면 언뜻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뭐, 내용이지 내용, 하고 얼버무릴 수는 있겠지만요. 그래서 제가 콘텐츠란 무엇인가, 아주 명확하게 정리하겠습니다(헐, 도대체 이 근자감은 무엇이란 말인가).
콘텐츠는 삶에서 발견하는 여러 가지를 글자, 이미지, 영상, 조형처럼 눈에 보이거나 서비스, 호스피털리티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형태로 만든 것입니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동양 철학자인 프랑수아 줄리앙의 말을 빌리면 형상을 지닌 이것은 formata 입니다. 즉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 이벤트를 형상으로 만든 것이 바로 콘텐츠입니다. 물론 프랑수아 줄리앙은 콘텐츠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움이라고 했지요. 우기면 뭐, 콘텐츠는 아름답다, 라고 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콘텐츠가 될 수 없습니다. 응?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만들었으면 됐지 그게 왜 콘텐츠가 아니냐라고 말씀하실 수 있겠습니다. 콘텐츠가 충분하지 않던 시절에는 그걸로도 족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콘텐츠가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유사한 콘텐츠를 넘어 아예 베낀 콘텐츠도 수두룩한 세상입니다. 오리지널이 어떤 건지 그것 조차도 애매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콘텐츠로서 가치가 있으려면 한 가지 조건을 더 채워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Distincta, 구별입니다. 다른 콘텐츠와 구별되는 어떤 점, 그게 있어야 진정한 콘텐츠가 됩니다.
정리해보겠습니다. 콘텐츠는 삶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를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이 오감으로 확인할 수 있게 형상화한 것이며 구별되는 것입니다. 구별할 수 없는 그 무언가는 콘텐츠가 아닙니다. 조금 더 심하게 말하면 이런 것들은 디지털 가비지일 뿐입니다. 어디에나 있는, 존재 가치를 찾기 어려운, 가상 세계나 실 세계의 일부분을 차지하면서 전기 에너지를 포함한 에너지를 낭비하는 존재 말입니다.
그렇다면 구별하는 콘텐츠는 어떻게 만들까요? 이런 거까지 한꺼번에 풀면 제 밥그릇이 날아갑니다. 이건 저와 저희 회사의 비즈니스 전략입니다(!). 다음 기회를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