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승부에 있어서 스포츠 정신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그중 눈여겨볼 점은 스포츠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행위라는 것입니다. 정정당당하게 겨뤄야 하는 이유는 스스로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이고, 승패에 연연하지 않아야 하는 건 ‘자신과의 싸움’에 우열이 없기 때문입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직장생활도 일종의 스포츠인 것 같습니다. 회사가 필드라면, 직원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을 이어가는 선수들입니다. 물론 성장, 돈, 승진 등 각자의 목표는 다양하겠지요. 이 중 주목할 것은 성장을 위해 수고를 마다치 않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달성을 위해 고통을 감수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이들은 ‘남보다 내가 더 많은 성과를 거뒀는지’보다, ‘내가 전보다 얼마나 더 나아졌는지’에 집중합니다. 필드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도 스포츠 정신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람들이죠.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본 다큐 시리즈를 리뷰하며, 조직 내에서 스포츠 정신을 발휘하는 사람들은 어디서, 어떻게 원동력을 얻는지 생각해봤습니다.
‘나’를 위해 묵묵히 성실한 사람들
<치어: 승리를 위하여>(이하 <치어>)는 텍사스 주 나바로 대학 치어리더 팀에서 벌어지는 일을 담은 다큐 시리즈입니다. 바비 인형 같은 외모, 쿼터백의 연인의 모습을 한 치어리더를 생각하며 이 시리즈를 본다면 놀랄지도 모릅니다. 치어리딩이 풋볼과 견줄 수 있을 만큼 거친 종목이라는 걸 알게 될 테니까요. 남성 치어리더가 흔하다는 것 역시 주목할 만하고요.

‘NCA & NDA Collegiate National Championship’은 플로리다 데이토나비치에서 열리는 대학부 전국 대회입니다. 치어리딩을 하는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데이토나에 가길 꿈꿉니다. 하지만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건 단 스무 명뿐이죠. 각 팀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고작 2분 15초지만, 완벽하게 선보이려면 수십 번을 연습해야 합니다.
나바로 팀 치어리더는 서로 다른 성장배경과 성격,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목표는 같습니다. 더 나은 치어리더가 되는 것입니다. 골절에서 심하면 사망에 이르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만, 치어리딩을 그만두는 것보다는 낫다고 여깁니다. 이렇게까지 치어리딩을 해서 무엇을 얻냐고요? 그냥 ‘실력 좋은 치어리더’가 될 뿐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치어리더로서의 수명도 끝나기 때문에 최고의 치어리더가 된다 해도 기쁨은 잠시뿐이죠.

저는 나바로 팀 치어리더처럼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 묵묵히 성실한 사람들을 존경합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남에게도, 스스로에게도 의리 있는 사람이 아닐까요? 남에게 욕먹지 않으려고 열심히 일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미래의 내가 후회하지 않기 위해 오늘 고생하는 건 좀 다릅니다. 이런 자발적 고생은 자기 자신을 믿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되거든요. 다른 사람보다 내가 나에게 내리는 평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진심으로 자신의 성장을 바라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단언컨대, 야근을 많이 하는 것과 성실한 건 별개입니다. 열정페이를 감당하며 일하는 것과 성실한 건 별개입니다!)
스포츠 정신으로 일하는 사람은 본인의 성장 만큼 타인과 조직의 성장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좋은 동료이자 선후배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회사와 본인 모두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죠. 이것이 미디어브레인을 포함한 회사 대다수가 주인공처럼 일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기회는 언제나 오지 않는다

데이토나에 갈 스무 명에 뽑히지 않은 치어리더는 무엇을 할까요? 데이토나에 갈 것처럼 연습합니다. 언제 누가 부상을 당할 지 모르거든요. 모건은 동료의 부상으로 탑 걸*이 될 기회를 얻었습니다. 라다리우스가 불건전한 태도로 팀에 악영향을 미치자, 텀블링을 전혀 못 하는 제리에게도 기회가 옵니다. 이처럼 당장은 스무 명에 속하지 않지만, 당장 내일, 혹은 대회 당일에라도 매트 위에 설 기회가 올 수 있습니다.
*탑 걸 : 스턴트 치어리딩에서 공중으로 던져지는 여자 치어리더
지난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 높이뛰기 신기록(2m 35)을 세웠던 우상혁 선수를 기억하시나요? 전 세계인들이 우 선수의 긍정적인 태도에 열광하며, ‘스마일 점퍼’라는 별명도 붙여주었습니다. 그렇다고 우 선수가 긍정의 힘만으로 신기록을 달성한 건 아닙니다. 머리맡에 ‘2m35’라는 글귀를 놓고 잘 정도로 목표가 명확했거든요. 또한 높이뛰기를 너무나 좋아해서 수많은 훈련 통해 발 크기가 다른 핸디캡도 극복했다고 하죠.
확실하지도 않은 미래를 위해 ‘5분 대기조’가 되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우상혁 선수처럼 확실하고 설레는 목표가 있다면 말이죠. 제가 살면서 마주친 ‘5분 대기조’들은 하나같이 명확한 목표가 있었고, 그 목표를 이룬 자신의 모습을 몹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목표와 설렘은 달성으로 가는 쌍두마차 같습니다. 확실해도 설레지 않는 목표이거나, 설레기만 하고 확실하지 않은 것을 목표로 하면 오래갈 수 없죠. 확실하고 설레는 목표를 세운다면 5분 대기조가 되는 건 자연스럽게 뒤따라온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5분 대기조로 사는 시간이 충분히 쌓이면, ‘당장 내일부터 팀장으로 일해라!’고 했을 때 겁먹는 게 아니라 드디어 기회가 왔다며 기뻐할 수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미디어브레인이 채용에 있어서 학력과 스펙보다 목표의식에 비중을 두고, 배운 것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고자 하는 적극성이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꿈꾸던 것을 이룰 기회가 온다면, 잡을 준비가 되어 있나요? 그렇지 않다면 내게 충분히 확실하고 설레는 목표가 있는지부터 점검해보는 게 좋겠습니다.
좋은 코치에게서 좋은 치어리더가 나온다

지금 어떤 리더와 함께 일하고 있나요?
나바로 팀을 이끄는 모니카 코치는 ‘여왕’으로 불립니다. 한 번 세운 목표는 반드시 달성해야만 직성이 풀려서 매일 늦은 시간까지 루틴을 연구합니다. 결국 나바로 팀은 데이토나에서 14연승을 거둔 미국 최고의 팀이 되었죠.
모니카는 치어리딩만 잘하는 게 아니라,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팀워크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팀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나바로 팀 활동 중 한 번이라도 폭행, 가출, 마약, 자살 등 나쁜 행동을 하면 팀에서 무조건 퇴출입니다. 여기에 혹독한 연습까지 감당해야 하죠. 매우 엄해서 때로는 가혹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한 번 팀에 들어온 치어리더는 자신의 아이처럼 책임지고 돌봅니다. 덕분에 나바로 치어리더는 코치와 팀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품고 있습니다.

물론 코치 역할이 즐겁기만 한 건 아닙니다. 텀블러 렉시의 신체 사진을 누군가 SNS에 유포하면서 경찰과 면담해 법적 조처를 하는 일도 있었죠. <치어> 시즌2에서 모니카 코치는 꿈꾸던 TV쇼에 출연하기 위해 코치 자리를 내려놓게 되는데요. 그 사이 스턴터 제리가 성착취 혐의로 FBI에 체포됩니다. 모니카는 나바로 팀 코치가 아닌데도, 제리를 비판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수많은 악플도 견뎌야 했습니다. 아들처럼 여겼던 라다리우스가 온라인에서 자신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것도 견뎌야 했고요.

요즘 어떤 팀장이 되고 싶은지를 자주 생각합니다. 아직 사원이라 팀장이 되려면 10년은 더 걸리겠지만, 좋은 팀장이 되기가 도 닦기만큼 오래 걸리고 어려운 일 같아서 말이죠. 하지만 <치어>에서 그려지는 모니카의 수모를 지켜보며,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리더 자리가 쉽지 않은 이유는 내 잘못이 아니어도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팀은 한 사람만으로는 해내기 어려운 더 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팀원이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리더가 길을 밝혀주고, 곤란한 상황이 생겼을 때 바람막이가 되어야 하죠. 직장에 막 다니기 시작했을 때, 가장 두려운 게 ‘실수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시키는 일만 하게 되었죠. 제가 무엇을 잘하는지, 저에게 얼마만큼의 자유가 허용되는지, 실수하면 누가 책임지게 되는지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리더를 만나고 나서야 저답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실수도 적어진 건 물론입니다.
팀장이라서 남의 실수까지 떠안아야 하는 건 좀 억울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해서 목표를 더 멋지게 달성할 수 있다면 감당할 만하지 않나요? 저 역시 그런 팀장이 되고 싶습니다. 팀원이 스포츠 정신으로 일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팀장 말입니다.

자꾸만 성장하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신념이 있는 듯합니다. 누구에게나 가능성이 있다는 믿음, 내가 나의 주인공이 되겠다는 의지 같은 것 말이죠. 일터에서 스포츠 정신을 발휘한다는 건, 이러한 신념을 표현하는 가장 멋진 방법인 것 같습니다.
매일이 전쟁 같은 직장생활이지만 그럼에도 내가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 내가 평가하는 나는 어떤지 생각해보는 건 분명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일 잘한다고 소문난 ‘그 사람’을 관찰하는 것부터 시작해도 좋겠지요. 동료, 상사와 함께 고민한다면 베스트고요. 미디어브레인이 You go, We go라고 강조하듯,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면 더 오래갈 수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