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브레인

글 쓸 때 옆에 두면 정말 좋은 책

얼마 전부터 글 쓸 때 꼭 옆에 두는 책이 있다. 베껴 써야 할 내용이 있는 책은 아니다. 왠만하면 챗지피티 선생이 다 알아서 해주는데 내용을 참고할 만한 책을 굳이 두어야 할 필요는 없다. 사전은 더 말할 것도 없고(사전 사이트 잘 되어 있잖?) 맞춤법도 다 알아서 검사해 주고… 그럼 뭘 옆에 두고 있다는 말이야? (이러면 좀 궁금해 하실까?) 

다른 글은 몰라도 이 글의 인트로 만큼은 확 끌어당겨야 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실패했지 싶다. 얼른 실토한다. 백우진 선배의 “첨삭 글쓰기” 라는 책이다. 제목처럼 글을 쓸 때마다 어떻게 쓰라고 가르쳐 주는 책이다.

만일 내가 이 책을 읽지 않고 글을 썼다면 아마, 이렇게 시작했겠다. “챗지피티가 누구보다 글을 잘 쓰는 세상이 되어서 글 쓰는 직업이 위태해졌다고 하지만 나는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 모름지기 글도 창작의 도구이고 다른 예술이나 기술처럼 타고 나야 잘 쓰는 법인데 언어 뭉치로 이루어진 AI 따위가 잘 쓰면 얼마나 잘 쓰겠나? 목차를 잡고 기본 지식을 알려줄 수야 있겠지만 인간만큼 쓰지는 못할 것이다. 절대로.”

그러면서 여전히 글쓰기는 중요하고 아무리 타고나도 훈련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으니 이 책은 너에게 실제로 도움이 될 거야, 꼭 사보면 좋겠다, 라는 식으로 블라블라 했겠지. 하지만 이 책을 옆에 두고, 게다가 이 책에 대해 글까지 쓰고 있으니 저런 하나마나한 소리를 도입부에 두기가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나름 글 쓸 때 옆에 두는 책이 뭐야? 라는 호기심을 일으키고 싶었으나, 아무래도 개 망했다. 

첨삭 글쓰기의 1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도입부가 결정한다.” 첫 머리를 제대로 쓰란 말이다. 그래서 어떻게 쓰란 말이오? 라고 속으로 물을라 치면 사례를 툭 던진다. 그러면서 로빈슨 크루소를 까고 체호프를 치켜 세운다. 심지어 모파상의 진주목걸이를 풀어 써 준다. 아, 이렇게 하는 거구나. 24살에 잡지 기자가 되어 32년째 글 잘 쓴다고 자부하고 살았는데 나는 헛살았구나. 하지만 대니얼 디포도 까이고 모파상도 내동댕이 쳐졌는데 나 정도야 뭐, 이리 생각하니 훨씬 마음이 편안해졌다. 

계속 읽었다. 대충 흘려 쓰지 말고 각을 세워라, 프레임을 짜라, 인용과 위트를 넣어라, 중요한 얘기를 먼저 꺼내라, 일반 대신 개별을 설명해라 하고 열심히 설명을 해준다. 그게 뭔 소리요? 할라 치면 바로 사례가 나온다. 그냥 사례만 알려주면 어찌 아나? 이렇게 한 경우와 하지 않은 경우 두 개를 비교해 준다. 이렇게 단을 나눠 왼쪽과 오른쪽에 사례를 실으면 전차책으로는 도저히 볼 수가 없다. 그러니 보관과 갖고 다니기에 편하고 검색도 잘되는 전자책을 사랑하는 나 같은 독자라도 이 책은 사야 한다. 

심지어 실로 꿰매 만들었다. 풀로 붙이지 않고 실로 꿰맨 탓에 책이 활짝 펴진다. 펴 놓기에 아주 아주 좋단 말이다. 곁에 두고 봐야 할 책이라면 당연히 이 정도는 해야 한다. 그러니 이젠 옆에 놓지 않을 핑계 조차도 없어졌다. 

잠깐 샜다. 계속해서 책에는 단문과 장문, 접속사, ‘것’이 도마에 오른다. 무조건 짧은 게 좋아, 라는 나의 고집은 박살 났고 쓸모없는 접속사를 지웠으며 ‘것’을 한 번도 안 쓰려고 노력했다. 적어도 이 글에서만큼은. 내가 이 책을 옆에 두지 않고 글을 썼다면 ‘것’을 뺄 수 있었을까? 못했다. 절대. 이건 써야 해, 라고 핑계를 대며 쓸데없는 ‘것’의 무리들을 슬금슬금 밀어 넣었을 테지. 

경제전문가인 선배답게 수해력에 대한 글이 이어진다. 나처럼 DNA부터 문과인 사람은 그냥 건너뛰고 싶은 유혹을 강하게 느끼는 장이지만 그러지 않길 잘했다. 일부러 그랬건 몰라서 그랬건 수치를 잘못 풀어 쓴 글들이 우리를 혼란하게 했고 중요한 사건을 덮기도 했다. 각자도생의 시대에 수해력이야 말로 꼭 갖춰야 할 능력임을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글은 정확한 사고를 위한 정확한 독해 제안으로 매조진다. 똑바로 읽고 똑바로 이해하고 의심스러우면 확인하고 또 확인하라고 조언한다. 

챗지피티 같은 생성 AI가 프로프트 엔지니어링이 신종 직업으로 각광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챗지피티가 발전하는 속도를 보면 프롬프트는 금세 만들어 주겠다. 그러면 인간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나는 그 답이 글쓰기에 있다고 본다. 물론 그냥 흘려 쓰거나 쓰던 대로 쓰거나 하는 글은 AI가 다 써 준다. 인간은 AI는 결코 쓰지 못할 글을 써야 한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 생각해둔 바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것은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니, 오늘은 팔던 책을 다 팔고 가야겠다. 이 책은 AI는 결코 쓰지 못할 글을 쓰도록 도와준다. 당신이 그럴 마음만 있다면. 

Ray
Ray
미디어브레인 김형덕 부사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