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장기기증 서약을 한다고 했을 때, 솔직히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영혼이 있다고 믿지만, 영혼이 떠난 육체는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배우지 못했던 탓일까. 나는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달라 했고, 며칠이 지나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에게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나면 절차는 나와 OO이가(동생) 해야 하는데, 조금 더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엄마는 금세 동의했고 장기기증 서약은 없던 일이 됐다. 몇 년 전 얘기다.
한 청년이 교통사고로 뇌사했다. 사고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부모는 장기기증 권유를 받아야 했고 분노하고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장기기증에 동의한다. 여기서 끝나면 뻔한 이야기겠지. 장기기증 과정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다양한 방식으로 얽혀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작가는 그 과정의 복잡함과 신속함은 물론 속한 사람들의 감정까지 풀어낸다. 장기기증은 죽었지만 살아있는 것을 살았지만 죽어가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과정. 모두의 감정이 극도로 예민하게 돌아간다.
책은 어렵다. 엄청나게 드라이한 톤으로 시작이 무엇이었는지 까먹을 정도의 긴 문장과 툭툭 끊어대는 짧은 문장이 빠른 속도로 나열한다. 길고 짧은 문장 속에서 ‘갑자기 이 얘기는 뭐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속도가 빠를지언정 언젠가는 우리에게 일어날 지도, 일어나지 않을 지도 모를 생명이 이어지는 과정을 슬며시 예측할 수는 있었다. 책을 읽고 나서 이런 일이 생기면 나는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고민의 결과는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 정도 고민과 생각을 연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내게 이 책은 충분히 의미를 줬다.